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오키나와 관계 (문단 편집) === [[미국 통치기 류큐 열도|미국의 통치]] 이후 [[오키나와/역사/일본국|일본으로 반환]] === 일제 시절 받았던 핍박과 미군기지 문제 방치 때문에 오키나와에서는 본토 및 일본 중앙정부에 대한 감정이 영 좋지 못하다. 1975년에 일본 좌파운동이 강했던 시절에는 오키나와를 방문한 일본 황태자([[아키히토]])를 암살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http://ja.wikipedia.org/wiki/%E3%81%B2%E3%82%81%E3%82%86%E3%82%8A%E3%81%AE%E5%A1%94%E4%BA%8B%E4%BB%B6|히메유리의 탑 사건.]] 1989년 [[쇼와 덴노]]가 죽었을 때 오키나와는 다른 일본 내 지역과 달리 임시 공휴일로 정하지 않았으며 태평양 전쟁 전범이 죽은 것뿐이라는 지역 언론의 비아냥도 있었다. 당시 [[동아일보]]가 오키나와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한 승려가 도쿄를 향해 큰절을 하며 쇼와 덴노의 명복을 비는데 사람들은 [[투명인간]]처럼 보듯 지나갔으며 지나가던 사람 몇몇은 이걸 보고 침까지 뱉으며 욕을 하고 갔다고 한다.[* 『오키나와의 눈물』(메도루마 슌, 논형, 2013) 33쪽을 보면 저자의 부친이 쇼와 덴노가 어떤 축하연에서 하객들에게 '고맙다'라고 말하는 걸 TV로 보고 '"고맙습니다, 라고 해!"'라고 격노했다는 부분이 있다. 장년층 이상의 오키나와 주민들이 '본토'와 천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드러내는 상징적인 부분.] [[2013년]] 4월 28일, 일본 [[총리]] [[아베 신조]]가 샌프란시스코 조약 61주년을 맞아 이 날을 '주권회복의 날'로 명명하고 [[천황]] 등이 참석한 식전행사를 거행하자 오키나와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이날이 오히려 일본으로부터 버림받은 '굴욕의 날'이라며 항의 집회를 개최했다. 이는 1952년 4월 28일 상기한 조약의 발효로 일본이 주권을 회복했을 때 일본 정부가 [[아마미 제도]]가 포함된 오키나와 열도를 거들떠도 안 보고 미군 지배하에 방치하고 외면했기 때문이다. [[http://www.segye.com/Articles/NEWS/INTERNATIONAL/Article.asp?aid=20130428002417&subctg1=&subctg2=&OutUrl=naver|기사]] 2014년 3월 13일, 현내의 [[야에야마]] 지구 소속 다케토미초(竹富町)가 일본 정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구가 결정한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계열의 이쿠호샤 교과서 채택을 거부하고 도쿄서적 교과서를 쓰기로 결정했다. 다케토미초 당국은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에 대한 실태를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으나 일본 문부과학성은 직접 시정조치를 명령하여 압박을 강화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96&aid=0000295767|참조]] 4월 9일, 일본 정부가 법률을 개정하면서까지 교과서 채택을 강요하자 다케토미초는 해당 교과서를 채택한 교육구에서 탈퇴해버리고 독립적인 교과서 채택지구를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상급 단위인 오키나와현 교육위원회도 이에 지지 의사를 밝혀, 일단 다케토미초의 결정은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1&aid=0006854895|#]] 2014년 5월 21일, 오키나와현 교육위원회가 다케토미초의 독자적인 역사교과서 채택을 승인함에 따라 '교과서 내전'에서 일본 정부가 사실상 패배했다. 법률까지 바꿔가며 교과서를 채택하도록 압력을 가했지만, 개정 법률의 허점을 파고든 다케토미초의 결정에 오히려 일본 정부가 승복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자승자박~~ 관방장관과 문부과학성 모두 다케토미초와 오키나와 교육위원회의 결정을 인정하여 패배를 받아들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23&aid=0002754641|#]] 이런 식으로 오키나와는 역사 교육 인식도 본토와 크게 달라 오키나와에서는 지금도 [[기미가요]]를 악보도 본 적이 없어서 부를 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사실 교육하는 게 오히려 뉴스로 특필될 것이다. 2017년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 45주년을 맞아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오키나와 주민은 44%가 ‘일본의 안전을 위해서 오키나와에 미군기지가 있는 것을 용인할 수 있다’고 답했고, ‘용인할 수 없다’고 답한 이는 48% 로 비등한 여론을 보여준 반면 오키나와를 제외한 일본인의 71%는 ‘용인할 수 있다’고 답했고, 20%만이 ‘용인할 수 없다’고 답해 큰 대조를 보였다. [[http://m.news.naver.com/read.nhn?oid=028&aid=0002364633&sid1=104&mode=LSD|#]] 2023년 6월 9일, 다마키 데니 오키나와현지사가 방위성을 방문해 반격능력용 미사일 배치 반대를 밝혔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993401?sid=10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